세상 사는 이야기

비가 오면 생각나는 추억의 한 페이지

두나별 2007. 11. 23. 17:53
나에게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 돌처럼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아름답고도
고통 스러운 추억이 하나있다.
여차하면 강릉행 밤열차를 타고 강원도로 달려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던 나는
그 날도 1년 후배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그 후배는 전라도에서 서울 땅으로 유학을 온 지방 학생이었다.
여행으로 열차를 타 보는게 처음이라면서 후배는 몹시 들떠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열차는 영주를 지나 강원도 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왼편으로는 안개속에서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처럼 히뿌옇게 드러나는 시골풍경
언제부터 일어나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길래 굴뚝에서 벌써 저렇게 연기가 피어오르는지..?

오른편으로는 새벽을 밝히는 태양이 산등성이에서 흔들리는 갈대의 끝머리 사이로 붉게 피어 올랐다. 산밑에서 올라오는 태양으로 인해 이쪽은 아직 어두운 산등성이위 갈대 사이로 햇살이 반짝 빛나자 후배는 감탄과 함께 탄성을 자아 냈다.

언니가 결혼을 해서 살던 동네 옥계로 갔다.
언니가 떠난뒤로 다른곳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가본 그 곳은 많이 변해 있었다.
옥계역에서 나가면 민물과 바다가 이어지는 그 강을 줄을 당겨  배를 타고 건너는 
운치도 있었는데 배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미관상 경관을 헤치는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회하여 마을로 들어갔다.
옥계 해수욕장!!
솔밭사이로 부대가 있었고 아름드리 큰 소나무는 키가 작아진 듯 하게 보였다.
(사람은 안 컸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커졌음이야!!)
그동안 흑파리 주사제를 맞아 쭉쭉 뻗은 곧은 소나무들만 보고 다녀서 보기엔 별로지만,
거친 해풍을 맞아가며 자연적으로 자란 그 소나무들의 겉 모습에서는 나이테만 잘 드러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었다.
해수욕장 주변에 있던  주택들도 다 없어지고 빈 폐허 몇개와 대신 그림처럼 아름다운
방가로가 나란히 줄을 지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갖은 폼을 다 잡아가며 컷을 날렸다.
이젠 바닷가에 발이라도 담가볼까 너무 찰까?
생각하며 바닷가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전엔 없던 흰색 연회색 자갈들이 잔뜩 갈려 있었다.
"어머 저기 웬 자갈들이야? 이상하네 여기 변한게 너무 많다 빨리 가보자"
자갈위에 앉아 놀 양으로 뛰어 가 보았더니 
그것은 자갈이 아닌 갈매기 떼가 인간이 뛰어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줄을 지어 날아 오르기 시작햇다.
정말 그런 장관이 또 있을까?
다시 볼 수 없을거라 생각 했지만 역시 그 뒤로 그런 장관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우린 소리를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갈매기가 날 때 
사진을 찍으려고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 돌아 다녔다.
그러는 동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까지 동원 됐다.
우산을 펴고 갈매기를 날리며 우산을 뒤로 놓고 사진을 찍으며 한껏 자연을 즐기는 동안
우산이 바람을 타고 바닷물로 날라가 버렸다.
아 "잃어버린 우산"이여!
그 때 당시는 그 노래가 안나왔었지만 지금 그 노래(우순실)를 들어도 그 때 생각이 난다.
추억이 많아서 머리가 깨질 것도 같다.
부슬부슬 내리던 안개비는 점차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방가로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하고 아까운 시간이 방갈로 안에서  다 지나가다니 참 비극이었다.
어느정도 잠잠해진 틈을 타 얼른 조금 떨어진 마을로 들어가 버스 시간 확인을 해 봤지만
버스가 오려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를 불러서 타고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거지의 3대 요소는 다 갖춘지라
우리에게 필요 한건 식사 휴식처와 포근한 잠이었다.
묵호로 나가서 따끈한 식사를 하고 여관방으로 들어가 열차 시간이 될 때 까지 맥주 한 잔씩 하고
포근한 잠을 잤다.

이 아늑하고 포근 따뜻한 휴식이라니...
무척 고생은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후배는 자기네 고향 함평에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 때 의  추억을 얘기 해 가며 
알콩 달콩 잘 살고 있답니다.
2007년 11월 23일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