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호수, 차가움보다 더한 고독의 설움이 흐른다 /호미숙
회화나무 한 그루 제 몸을 부둥키고
몇 아름의 둘레로 외로움을
홀로 끌어안았다
고개 떨구고 침묵과 침묵 사이
사계절이 몇 번을 지나
하얀 계절에 우리의 첫 만남의 자리
색바랜 나무 벤치엔 우리의 추억이
겨울 햇살을 보듬고 빛을 자른다
당신이 있던 빈자리엔
앞서간 내 그림자가
흔적을 감싸며 내려앉고
또 하나의 그림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서성인다
강바람의 싸늘함이 솜털을
간질이다 소름이 돋는다
아니, 차가움보다 더한
무서운 고독의 설움이 돋는 것이다
얼지 않은 호수는 유유히 흐르고
우리의 결빙된 사랑은 녹을 줄 모르는데
당신은 지금 내 곁에 없건만
은빛 호수 위,
한 무리의 새가 비상하며 겨울 풍경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