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피는 글

하늘나라로 간 남편에게 피워 올리는 전어구이

두나별 2006. 7. 5. 21:50

 

 

PD들이 팀에 새로 들어 왔을 때, 우리의 멋진 컨셉은 이것이며
이렇게 찍는 거다!라고
보여 주는몇 개의 '견본'들 가운데
"은빛 전어를 닮은 부부"는 성동구 어딘가에 있다는
한 전어집의 주인들이었습니다.


거길 방문했던 것은 제가 아닌 후배 여자 PD였는데
그녀는 이후 그곳 얘기를 입버릇처럼 늘어 놓곤 했지요.
"둘이 횟집에서 주방장하고 종업원으로 만났어요.

결혼을 하고서 둘이 할 일
못할일 가릴거 없이 닥치는 대로 했대요.
갓난 아이를 추운 겨울에 들처업고 트럭 타고 장사하기도 하고,
가스불 터져서 머리털 다 타버리기도 하고,
하여간 둘이 피눈물 나게 고생을 했대요."
방송 중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내는 울었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여 차린
식당의 주방에서 옛일을 짚어내던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흐느꼈지요.
느닷없이 터진 아내의 울음에 당황한 듯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울지 마 웃어. 이제 다 끝났잖아. 이제 좋은 일만 남았는데 뭐."
앞으로 다시는
그런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을 하듯 되뇌었지요.
"이제 다 끝났잖아. 좋은 일만 남았는데..."

그러면서도 부부는 그런 자랑을 했답니다.
그렇게 고생하긴 했지만 한시도 떨어져 본 일이 없었다구요.


며칠 전 그 여자 후배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불현듯 전어집의
그 예쁜 모습의 부부가
떠올라 그들을 이 칼럼에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전화해서
그들에게 기별을 넣으라고 했지요.
좋아라 하며 전화를 끊은 몇 분 뒤 전화기 저편에
다시 나타난 후배의 목소리는 잿빛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배님. 그 아저씨가요...
방송 한 지 몇 달 뒤에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세상에..."
사고가 나던 날,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구하러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방송 갈피 갈피마다
"너무 고생을 시켜서 미안해서 앞으로 뭐든 하고 싶은 걸 해 주고
싶다" 던 남편은
 아이스크림이라도 아내의 입에 물리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그리고
방송 중에 "손이 예뻐서 하는 음식이 맛있다"
던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오늘도 고생했다고 말하려 했겠지요.
그러나
남편은 그 뒤 가게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어는 성미가 급하여 바다를 떠나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생명을 버린다지요.
하지만
촬영하던 날 한 손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전어가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라,
제 놀던 물에 대한 정이 깊어서 상심해서 죽어 버리는 거라고...
어쩌면 아주머니에게 남편이란,
사나운 천적이 활개칠지언정 그 온화한 물결에 몸뚱이를
내 맡길 수 있었던,
떠나면 한시라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바다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제 마음에 위안이 되었던 것은,
또 후배가 그나마
생기있는 목소리를 냈던 이유는,
바다와 영원히 이별한 은빛 전어같은 아내가 그 슬픔을
딛고 남편의 칼을 의연하게 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코끝이 싸한 찬바람이 불면,
제철을 맞은 전어들은 다시 부부의 정다움이 뚝뚝 묻어나는
그 식당 수조로 몰려들겠죠.
그리고 아내는 그 살오른 전어들을 돌아간 남편의 솜씨로,
자신의 정성으로 굽고, 회를 쳐서 손님들께 내밀겠지요.
그리고 집 나간 며느리를 불러
온다는 구수한 전어 냄새는
아마도 천국에 있는 남편의 코끝에까지 스며들어, 바쁜
아내의 어깨 너머로 슬며시 찾아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의 방송에서처럼
살갑게 말을 걸어 주지 않을까요.
"여보 미안해. 이제 울지마 웃어.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내가 지켜 줄게."

 

P.S.천국에서 아내를 응원하고 있을 고인의 명복을,
결혼을 앞두고
뜻밖의 슬픈 사연을 캐내게 된 여자 후배에게 미안함을 전합니다.


여명전어집 2호선 상왕십리 전철역 2번출구....


AM7아침 정보지에서 감동 깊은 글이 있어 다 같이 감상하고자
한밤중이라도 올려 보았습니다.
그 날이 지나버리면 또 올리기가 좀 그래서요
즐감 하시기를...^^*


 

2004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