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세상

김천두 선생님의 그림 및 붓글씨

두나별 2007. 5. 16. 22:50

소천 김천두 선생은 지금도 열심히 작업에 충실히 하고 계신다.


말년의 피카소가 도예작업에 심취 했듯이


소천 선생님도 자신의 고향인 정남진를 생각 하시며

 

그의 고향인 득량만 금포 바다를 생각 하며 옛 시절에 보아온 바다 풍경과

 

그의 집 뒤에 위치한


큰산인 천관산를 생각 하며 수 많은 작업을 도예 작품 으로 승화 시키고 있다.

그가 어린시절 학습하고 시.서.화 배우고 익힌 유천재를 그리면서


호남 성리학자며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 학풍을 이어 받은 창천재에서 수학하고

 

유천재를 설립한 소석 김노현은 호남의 성리학자이며 예학에 능통


하였다.특히 소석선생은 학문에 박통경사 하고 지재육여하야 교도후생 하였고

 

여소연재 최면암 기송사 등과 위도의부 하고 유집이 남아 있고 방래한


문인들이 유천재를 설립하고 배향 하고 있다.

그의 제자인 호남 의사 치제 김영엽 등이 수업 하였다

소천은 호남의 마지막 성리 학자인 다초 위복량 으로 부터 한시와 서예(서도)수업을 받았다.

그때에 왕희지체와 구양순.황산곡. 추사체를 그의 서예의 규범으로 삼았다.

이러한 자유스런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은 자기만의 개성적인 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학문은 존재 위백규 의 실사구시의 호남 실학의 태두인 존재의 사상을 이어 받은

 

소석 김노현. 다초 위복량의 실천적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의 실질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현실.관념보다는 사실적인 학문을 받아 들였다.

소천은 이러한 수업을 받으면서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서울로 유학 하여 선린상업학교 입학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천은 유천재에서 학연과 묵연.시연.화연 맺은것이다.그의 학습공간이며. 또한 작업 공간 이다.

내년 80을 바라보는 노 화가는 자신의 작업공간이며 학문의 도장인 유천재와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천관산도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유천재화향만년 이라는 제발을 주면서

 

아버지와 아들(김선두.김선일) 소나무로 읽는 것을 들은 바 있다.아버지화가와

아들화가가 이 마을에서 솔향 같은 묵향을 오래도록 피우길 바란다는 뜻이다.